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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정공>여존재기(如存齋記)사직공휘화(詞直公諱和)
如存齋記 昇平治西飛龍村備北顔如存而齋輪奂即之世玉川趙氏阡也後有鵲峰競爽前有龍川灣回清淑之氣融乎凝聚司直公諱和再傳而縣監公諱大承又再傳而奉事公諱瑋通德郎公諱義吉世竁也司直公燕山朝休官退居以姱晩節縣監公明廟賓天解紱歸鄉以終餘年奉事公扈駕龍灣累承顧眄通德公丙子稱義媾成不仕而終鳴乎今距公數百年而論其勢其淸風峻節足令人聳動起敬焉舊有齋宿之所而湫隘甚今改竪瓦覆凡四棟而東西堂宇中間廳舍前有門三間其規制視前頗軒敞亦見其肯構之勤矣祭儀曰色不忘乎目聲不絶乎耳心志嗜欲不忘乎心竊念子孫之於祖先固常思之思之熱則聲音笑貌自不忘乎耳目心志嗜欲白不忘乎心不忘則斯著存矣君子平日言行固無時不敬故跬歩不敢忘孝孝又百行之原故曰孝悌之至通乎神明達于四海夫平日言行固敬之如是而况祭又報本追遠之大者乎司直公之恬退高節縣監公之優得清致奉事公之原從祿勲通德公之尊周大義固國人之所共敬之而况爲其子孫者乎平日固當敬之而况致其齋而裸獻之罔或不敬乎敬則思思則存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而君子之第也必身親莅之者也使司直通德公之子孫而存之如是司直通德公之節義宜益著於天下後世矣其不又著存之大者乎龍基甫余友而龜村公之肖胤也司直通德公之賢仍也龜村公在世之日己有記而發如存之義龍基甫因其齋之改而責余相其役猥贅一言於其後如右云 戊戌中秋下弦 永嘉 權純命 書于 瀛州靑石山房 여존재기(如存齋記) 승평 고을 비룡촌이 있고 그 북편에 여존(如存)이라고 현판한 높고 빛난 재각이 있으니 이는 곧 옥천 조 씨 묘도이다. 뒤에는 까치봉이 높이 솟아 청쾌하고 앞에는 용천(龍川)이 구비적 흘러 맑은 기운이 융융하게 어리어 모은다. 여기는 사직공 휘 화(和) 두 번 전하여 현감공 휘 대승(大承) 또 두 번 전하여 봉사공 휘 위(瑋) 통덕랑공(通德郎公) 휘 의길(義吉)이 잠들어 있다. 사직공은 연산군(燕山君) 때에 벼슬에서 물러앉아 만절을 곱게 지냈고, 현감공은 명종(明宗)이 승하하시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여생을 마치었으며, 봉사공은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의주(義州)에 이르러 여러 번 돌아보심을 받았고, 통덕랑공은 병자호란 때에 의병을 이끌고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향하다가 화맹이 성립되자 벼슬을 하지 않다가 끝내 세상을 마치었다. 아! 그 후로 4백 년이 지났지만 지금 그 시대를 의논하니 그 청풍대절(清風大節)이 족히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하고 외경(畏敬)하게 한다. 옛부터 있는 재각이 심히 저함하고 좁아 이제 고쳐 세우고 개와하여 무릇 四간인데 동서 당우 가운데는 대청이요 앞에 문 三간이 있어 그 규모가 전에 비하여 자못 크고 밝으니 또 부지런히 세업을 계승하였음을 보겠도다. 제의(祭儀)에 가로되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마음으로 심지 기욕(嗜欲)을 잊지 말라.』 하였은즉 내가 생각하건대 이것이 자손이 선조를 진실로 항상 생각한 것이다. 깊이 생각한즉 성음과 웃는 모양이 스스로 이목에 떠나지 않고 마음에 좋아하고자 한 것이 스스로 마음에 있는 것이니 잊어버리지 아니한즉 이에 계신 것이 나타난 것이다. 군자는 평일 언행을 진실로 공경하지 않은 때가 없는 고로 한 걸음을 걸을 때도 효도를 잊지 않는다. 효도는 또 모든 행실의 근원이기 때문에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면 신명(神明)이 통하고 사해(四海)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평일 언행도 공경함을 이와 같이 해야 하거늘 하물며 제사나 보본추원(報本追遠)하는 큰일이겠는가! 사직공의 조용히 물러난 높은 절조와 현감공의 크게 맑은 풍치를 얻은 것이며, 봉사공의 原從 녹훈과 통덕공의 나라를 위한 큰 의리는 나라 사람들이 모두 공경할 바인데 하물며 그 자손 된 자이라. 평상시에도 마땅히 공경할 것이거늘 목욕재계하고 향사함에 있어 어찌 공경하지 않겠는가! 공경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 계신 듯하여 광대하게 그 위에 계신 것 같고 그 좌우에 계신 것 같으니, 군자는 그래서 향사할 때 반드시 몸소 친히 임한다. 사직 통덕공의 자손이 되어 이와 같이 마음을 가진다면 사직 통덕공의 절의가 더욱 천하 후세에 나타나게 될 것이니, 그 또한 크게 계신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용기(龍基) 씨는 나의 친교요, 귀촌공의 어진 아들이며 사직 통덕공의 어진 후손이다. 귀촌공이 살아 계실 때에 이미 기문을 지어 여존의 뜻을 발표하였고 용기 씨가 그 재각의 보수로 인하여 나에게 그 일을 맡김으로 외람되게 한 말을 그 뒤에 더하여 위와 같이 기록하다. 瀛州 靑石山房에서 永嘉 權純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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